교회소식

목사님설교요약

거리가 얼마일까(2.26)

손창숙 0 1,426

거리가 얼마일까 (요한복음 13:1~11)

 

오늘은 나사렛 청년주일 입니다. 요즘은 젊은이들은 연예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며 산다고 합니다. 점점 포기할 것이 많아지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또한 3.1절 기념주일입니다. 98년 전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쳤던 선조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불안과 염려 속에 희망을 잃어가는 우리들의 외침은 무엇일까요? 우리나라가 다시 희망으로 꿈을 꿀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아시고 우리의 신음까지도 들으시는 분이시기에 도우시고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주님과 얼마나 가깝게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13장에서 사도요한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날인 목요일 밤 그가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증언합니다. 그 사랑의 행동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아신다는 말씀이 5번이 나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님이 3년 동안이나 함께했던 제자들과 마지막 순간에는 왜 그리 거리가 멀어졌을까요? 예수님의 사랑에 문제가 있어서 그럴까요? 3년의 시간을 함께 살았다면 주님 안에 제자들이 있고 제자들 안에 주님이 계셨어야 할텐데 제자들 안에는 예수님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습니다.

 

우리의 영적 뿌리는 무엇입니까? 말씀에 보면 벌써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다고 합니다. 가룟 유다의 생각의 뿌리는 영으로부터 왔고, 그 생각은 마귀가 불어넣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 말씀에 나온 것처럼 다윗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니, 사울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떠나니 악신이 임하였다다고 나눈 것처럼 인생의 성공의 실패는 많이 가진 것과 배운 것 보다 어떤 영의 지배 속에 살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나의 영적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예수님은 끝까지 제자들을 사랑하시려는 생각에 사로잡혀 계셨습니다. 자신이 떠나고 나면 한없이 두려워할 것에 대한 생각, 자신이 다시 부활의 몸을 입고 올 때 제자들을 어떻게 부르시고 품에 안으실까이 생각으로 가득하셨습니다. 하지만,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과 어떤 암호로 예수님을 넘겨줄까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이처럼 요즘 우리는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을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생각은 우리의 행동을 만들어냅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많이 하시고 사십니까? 우리의 동기는 무엇입니까? 가룟 유다는 무엇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을까요? 예수님의 일군이 되고 싶어서 제자가 되었을까요? 어쩌면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 쓰임받기 보다는 예수님을 이용해 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동기가 무엇입니까? 오늘 예배의 동기는 무엇입니까? ‘주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씻어 주셔서 주님의 일군이 되길 원합니다라는 동기입니까? 아니면, 가룟 유다처럼 주님의 힘과 능력으로 무엇인가 되고 싶고, 이루고 싶은 동기로 예배드리고 계십니까? 우리의 동기에 따라서 예수님과 하나가 될 수 있고, 거리가 멀어질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자신의 뜻대로 살다가 예수님과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예수님과 가룟 유다의 거리는 좁힐 수 없는 거리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한 때 주님을 배신했던 베드로는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치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가게 하시는 분이 우리 주님인 것을 믿습니다. 우리들 안에 그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청년들과 모든 성도들이 나라와 민족 가운데 귀하게 쓰임 받는 사랑과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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