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목사님설교요약

가장 불쌍한 사람(4.16)

손창숙 0 1,442

가장 불쌍한 사람 (고린도전서 15:12~19)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12,19)

 

바울은 왜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고 있을까요? 예수님은 분명히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보이셨고, 500여 형제에게도 보이셨습니다(고전 12:4~8). 초대교회 신자들이 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 수 있다는 거짓말같은 부활의 믿음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20여년이 지나자 부활신앙이 희미해졌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육체적인 부활에 대한 이해는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삶의 모진 환경을 딛고 일어나는 부활의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부활이 없는 자처럼 살고 말았습니다. 육적인 그리스도인 수준에 머물렀고, 교회 안에서 파당싸움을 그치지 않았고, 사랑 없는 은사 사용으로 교회를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신자들이 부활의 참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성경에서 부활이란 단어가 명사로 쓰일 때는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형용사로 쓰일 때는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관련해서 사용됩니다. , 부활이란 육체적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다는 것만이 아니라 죽은 믿음이 다시 살아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이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성찬을 나누면서도 정작 삶에 있어서는 부활의 능력), 부활의 권력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고린도 교회 신자들이 불쌍해 보였습니다. 육체적인 부활은 죽음 이후에 일어나지만, 삶의 부활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는 신비한 경험입니다. 부활신앙 뿐만 아니라 부활경험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누가복음 15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이 일어나(아나시스타스, 부활)’ 아버지께로 돌아왔을 때 지옥 같은 삶의 환경이 다시 살아(아나시스타스)’ 천국이 되었습니다. 둘째 아들에게 제공된 제일 좋은 옷, 금가락지, 새 신발, 살진 송아지 잔치는 그가 죽음 같은 운명에서 부활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가 부활의 능력, 부활의 권력을 경험한 것입니다.

 

믿음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확신하는 것이며, 그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부활이란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 지, 어떤 모습으로 나의 믿음이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믿음의 바로미터입니다. 어려운 삶의 환경 가운데서도 부활의 믿음으로 이겨내고 승리하는 부활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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