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목사님설교요약

로마에서도 증거하리라(2007.3.4)

안중교회 0 1,778

사도행전 23:1 ~ 11

천부장의 조치로 바울사도는 예루살렘 산헤드린 공회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바울에게 사형판결을 시도한 재판이었지만 재판정에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간에 바울이 제기한 부활문제로 양분, 분쟁이 야기되어 그 음모가 무산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두 사이에서 찢겨질 것 같은 사태가 발생하자 천부장은 죄수 신변보호 차원에서 다시 영문에 격리구금 하였습니다.

그날 밤 영문에 구금된 고통의 밤에 바울은 주님을 경험하였습니다. 여기 11절입니다.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크게 두 가지를 경험했습니다.

1. 주님이 그의 곁에 서 계신 것을 경험했습니다.

영문감옥에서 그는 이번 예루살렘에서 당한 일들, 매 맞고, 쇠사슬에 매이고, 찢겨 죽을 번 한 일들을 생각했겠지요. 앞으로 어떤 위험 고통이 기다리는지 앞이 캄캄한 형편이었습니다. 밀레도에서 두로에서 가이사랴에서 눈물로 예루살렘 행을 만류하던 성도들의 모습도 떠올랐겠지요. 깊은 밤 홀로 외롭고 약했을 것입니다. 그때에 바로 주님이 그의 곁에 서계셨습니다.

사람이 슬프고 낙심될 때 곁에 있어주는 사람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나를 진정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감옥에 바울사도, 사람은 누구도 그의 곁에 없었지만 사랑의 주님이 그의 곁에 계셨습니다. 엠마오 길에 두 제자가 부활하신 주님의 동행을 경험하고는 용기백배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고달픈 인생길에서 믿는 자의 곁에 함께 하십니다. 주목할 것은 주님은 바울 곁에 서서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서서 있음은 어떤 동작을 위한 자세입니다. 스데반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할 때 하늘이 열리고 주께서 서서 계신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행7:55). 앉아서 방관하시는 주님이 아니시고 일으켜주시고 붙잡아 주시고 이끌어주시는 분 서서 역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2. 말씀하시는 주님을 경험했습니다.

3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①“담대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인 재판정에서는 큰소리쳤지만 홀로있을 때 침울했겠지요. 사람은 홀로 있을 때 비관하고 심지어 자살 충동을 받는 것도 홀로 있을 때입니다. 주님은 홀로 힘이 빠지고 침울한 처지의 바울사도에게 담대하라 힘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을 대파하고 돌아와 장막에 홀로 있을 때 외롭고 두려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아 두려워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창15:1)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16:33) 하셨습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신앙의 마음이 아닙니다. 마귀는 약한 마음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어 흔듭니다. 그러나 곁에 계신 주님이 담대하라고 하십니다. 담대하여야 합니다. 담대한 신앙 앞에 마귀는 쫓겨 갑니다.


②“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바울의 예루살렘 활동을 인정하신 말씀입니다. 예루살렘 활동에서 그에게는 반대자뿐이고 고군분투했습니다. 성과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예루살렘 전도 활동을 인정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때로 사람의 인정을 못 받아도 성과가 안보여도 주님의 인정받는 삶, 주님의 인정받는 사역을 하면 됩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사람의 수고를 바보로 비판한 사람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1달란트 받은 사람이 영리하다고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인이 ‘잘하였도다’ 인정한 사람은 그 두사람 이었습니다. 주의 일할 때 사람들에게 오해받을 수도 핍박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인정하시면 됩니다. 또 주님이 인정하는 사람 때가 되면 사람도 인정하게 됩니다.

③“로마에 가서도 증거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전도자로서 바울의 꿈은 로마에 가서 전도하는 것이었습니다(행19:21). 로마에 가고 싶지만 지금까지 길이 막혔다고 했습니다(롬1:13). 그런데 주님이 로마행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두 가지 보장이 담겼습니다. 하나는 로마갈 때까지 예루살렘에서 죽지 않는다는 보장, 또 하나는 로마에 갈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겠다는 보장입니다. 놀라운 보장 아닙니까? 이 말씀은 바울이 좋은 형편에서 아닌 캄캄한 상황에서였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캄캄한 상황 중에서도 함께 하시고 꿈을 열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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