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목사님설교요약

“눈 물” (2022. 3. 6)

손창숙 0 839

눈 물 (요한복음 11:32~37)

 

우리는 어떨 때 눈물을 흘리나요? 슬픔과 고통, 아픔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기쁨과 감격의 순간에 혹은, 억울하고 비통할 때 눈물을 흘립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지나서야 예수님은 나사로의 마을 베다니에 도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중나온 마리아에게 (나사로)를 어디에 두었느냐?’고 물으셨고 와서 보옵소서하며 예수님을 안내하는 마리아를 보시고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35). 그런 예수님에 대해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나사로를 사랑하였는가!’(36) 라고 하는가 하면, 그 중 어떤 이는 "눈이 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분이,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하실 수 없었단 말이오?"(37) 하고 말하였습니다.

 

나사로의 집이 있는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근처를 지날 때면 나사로의 집에 들러 머물면서 식사도 하시곤 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나사로와 그의 누이들을 사랑하신(11:5) 예수님은 왜 나사로가 중한 병에 걸렸다는 말을 들으시고도, 서둘러 오지 않으셨을까요? 나사로가 죽어 무덤에 있은 후에 도착하셔서 마리아를 보시며 흘리는 예수님의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정말 나사로와 그 누이들을 사랑하시는 것일까요? 혹시 예수님은 남겨진 가족의 슬픔을 나누기 위해 눈물을 흘리시는 것일까요? 아니면 너무 늦게 온 것이 미안해서 눈물을 보이시는 것일까요?

 

성읍과 마을을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시고 질병을 고쳐 주시던 예수님은 무리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에 지쳐서 기진해 있는 것을 보시고는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또한 아들을 잃은 나인성과부를 보시고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불쌍히 여기다(스프랑크니조마이)”는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의 슬픔을 의미합니다. 마리아를 보면서 창자가 끊어지는 슬픔을 느끼시는 것은 그녀와 나사로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 때문에 그들이 겪는 죽음에 대해 심령에 비통히(격한 분노의 감정) 여기십니다(33). 비극적인 죽음의 원인이 되는 죄에 대한 예수님의 단호하고 맹렬한 분노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죽음 가운데 있는 나사로를 살려내심으로써, 죽음을 이기는 분,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임을 보여주십니다. 그 예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소원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의 길을, 고통을 감당하시면서, 묵묵히 가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마음을 흘려보내지 않아야 겠습니다. 우리를 자유케 하기 위해 복음으로서 오신 그 주님 앞에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다시 한번 새롭게 되는 사순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오늘도 일하시는 그 아버지의 말씀 안에서, 주님의 은혜 안에서 굳게 거하시며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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