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소식

목사님설교요약

“절망 앞에서” (2022.8.14)

손창숙 0 751

절망 앞에서 (창세기 41:25~36)

 

점술가와 현인들을 전부 불러서 바로가 꾼 꿈을 해석하도록 했지만, 어느 누구도 해석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답답하고 불안했을 바로의 앞에 요셉이 등장합니다.

 

요셉은 이집트로 팔려온 노예이고, 감옥에 갇힌 죄수입니다. 죄수가 바로 앞에서 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바로 앞에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미래는 물론이고, 생명조차도 안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바로 앞에 선 것입니다. 아무런 힘도 없는 요셉이 어떻게 바로의 꿈을 해석할 수 있었을까요?

 

요셉은 바로의 꿈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임금님께서 두 번 꾸신 꿈의 내용은 다 같은 것입니다. 임금님께서 장차 하셔야 할 일을 하나님이 보여 주신 것입니다”(41:25). ‘네 개의 그림을 보여 주셨지만, 내용은 동일합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망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곱 해 동안 흉년이 들 것입니다. 그리고 기근이 이 땅을 황폐하게 할 것입니다”(41:30-31). “임금님께서 같은 꿈을 두 번이나 거듭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시기로 이미 결정하시고, 그 일을 꼭 그대로 하시겠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41:32).

 

요셉은 이집트의 신과 같은 바로 앞에서 하나님을 논합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요셉의 말을 듣습니다. 요셉이 어떻게 바로 앞에서 당당하게 하나님을 말할 수 있었을까요?

 

요셉의 아버지 야곱에게는 네 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가족 관계가 복잡했고, 형제들 간의 관계가 썩 좋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지어서 입혔습니다. 채색옷을 입힌 것은 요셉이 이 집안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라는 의미였습니다.

 

야곱의 심부름으로 요셉이 형들을 찾아갔을 때, 그를 시기하던 형들은 꿈꾸는 녀석이 왔다. 저 녀석을 죽이자.’고 하였습니다. 형들은 요셉의 채색옷을 찢고 그를 깊은 웅덩이에 던져버립니다. ‘요셉을 죽이지 말자는 르우벤의 만류로 요셉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노예 시장에서 보디발에게 팔리는 신세가 됩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노예 신분으로 갖은 서러움을 겪던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후대에 바벨론으로 끌려간 포로들이 그 언제나 아침이 올까하는 고통과 불안 속에서 있을 때,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일제의 치하에서 절망하고 낙심하던 1945815, 광복의 순간이 왔습니다. 그리고 5년 후, 또다시 6.25 전쟁이라는 비극이 이 땅에 불어 닥친 그 때에도 하나님은 운행하고 계셨습니다.

 

광복의 순간이 온 것도, 16개의 참전국이 온 것도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이 민족이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안중교회 성도들이, 절망의 순간에 우리는 망하리라가 아니라, ‘우리는 이기리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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