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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설교요약

예수님의 장소들(11) 『여리고 – 삭개오를 부르시다』 (누가복음 19장 1~10절) 2026. 3. 22

손창숙 0 9

예수님의 장소들(11)  『여리고 – 삭개오를 부르시다』

(누가복음 19장 1~10절)

 예수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 특별한 사건을 통해 주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주님의 구원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은 예루살렘 입성 직전, 여리고에서 만난 삭개오의 이야기를 통해 기독교적 구원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삭개오는 세 가지 모습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1. 성공적인 도시인: 당시 상업의 중심지였던 여리고에서 '세리장' 이자 '부자'였습니다. 로마 정부와 결탁하여 부를 축적한, 현대 기준으로도 집념이 강하고 수완이 좋은 성공한 인물이었습니다.

  2. 외로운 구도자: 사회적 지위와 부를 가졌음에도 마음의 진정한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체면을 버리고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이는 풍요 속에서도 영혼의 갈급함을 느끼는 고독한 현대인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3. 이름 없는 죄인: 유대인들에게 세리는 동족을 착취하는 혐오의  대상이자 부정한 죄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부르기  보다 그저 '죄인'이라 낙인찍었습니다.

 예수님과 삭개오의 만남을 통해 본 구원의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나무 위의 그를 향해 "삭개오야"라고 먼저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던 그의 이름을 부르신 것은, 그의 살아온 고통과 삶의 궤적을 모두 알고 계신다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구원은 주님이 우리를 먼저 아시고 찾아오시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주님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은 삭개오의 가장 사적인 영역이자 삶의 중심입니다. 삭개오는 이를 즐거워하며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진정한 구원은 주님을 지식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가장 깊숙한 곳, 내 가치관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난 삭개오는 즉각적으로 변했습니다. 소유의 절반을 나누고, 착취한 것은 네 배로 갚겠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단순한 선행이 아니라 그의 인생의 근본적인 가치관이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삶의 동기와 목적과 방식이 달라지는 것, 그것이 구원받은 자의 확증입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의 이름을 알고, 그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립니다. 삭개오를 변화시킨 것은 율법의 정죄가 아니라, 죄인의 집까지 기꺼이 들어가시는 주님의 사랑과 십자가의 은혜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삭개오처럼 주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기를 바랍니다.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더라도, 주님 안에서 삶의 목적과 기쁨이 달라지는 구원의 은총이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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