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 (누가복음 19장 33~44절)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실때 왜 수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님의 무리를 환영했을까요?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언약의 왕조인 다윗 왕조가 세워진 곳이며 솔로몬이 왕위에 오를 때, 하나님은 “성전에 모여서 기도할 때마다 내가 그것을 듣겠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은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중심지였습니다. 당시 예루살렘과 유대를 다스리던 로마 제국 총독의 관저가 예루살렘 성전 가까이 있었고, 예루살렘 일대에 정치력을 행사하던 헤롯 왕과 그 집안의 행궁도 그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늘 예루살렘 성전 주변에 모여 있는 그 수많은 사람을 관리하고자 로마 수비대가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갈릴리에서 온 제자들을 비롯해서 헤롯 왕에 의해 증축된 제2성전을 본 많은 사람들은 감탄을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신 주님이 그곳으로 오신다는 것은 그동안 외세의 침략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예루살렘 성내 사람들로 하여금 흥분을 금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강력한 권세로 귀신들을 내어쫓는다는 것을 들은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강력한 힘을 가진 새로운 나라를 보여주는 그러한 메시아로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서 ‘호산나 다윗의 이름으로 오는 왕이시여’ 하고 찬송하며 그를 맞이했던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 오십니다.
성경은 예루살렘의 성에 나귀를 타고 들어가는 예수님의 모습은 스가랴 9장 9절에 나와 있는 예언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었다고 말합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왕이 네게 임하시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로마의 황제는 자기의 권력을 누리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죽입니다. 다른 왕들을 처벌합니다. 연약한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면서, 로마 시민들은 환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구원은 연약한 사람들을 위하여 죽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이고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우리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을 찬미합니다. 예수의 생명이 나의 생명을 살리고,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지키심을 고백하며 나아가는 안중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